우리 데이터 성숙도 자가진단 (O/X)
우리 데이터가 어디서부터 안 잡히는지 드러납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하셔야죠." 이 말, 대표님도 지겹게 들으셨을 겁니다.
강연에서도 듣고, 유튜브에서도 듣고, 대행사 미팅에서도 듣습니다. 다들 데이터 기반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데이터를 뭐부터, 어떻게 잡으라"는 건 아무도 안 알려 줍니다. 답답한 건 대표님만이 아닙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장님 대부분이 이 지점에서 막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회사에 데이터가 없는 게 아닙니다. 주문도 쌓이고, 광고 리포트도 매달 옵니다. 그런데 그게 손에 잡히는 무기가 안 됩니다. 숫자는 있는데 쓸 줄을 모르는 상태. 그게 대부분입니다.
더 답답한 건,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어디선가는 대시보드를 띄워 놓고, 코호트가 어떻고 리텐션이 어떻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우리만 뒤처진 것 같습니다. 뭔가 대단한 도구를 사야 할 것 같고, 개발자를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도구를 하나 결제합니다. 월 몇십만 원짜리를 붙여 놓고 처음 며칠은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면 안 켜게 됩니다. 화면은 복잡한데 정작 우리 회사에 무슨 뜻인지가 안 잡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구값만 매달 빠져나갑니다. 도구를 안 써서가 아니라, 도구를 쓸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도구부터 산 겁니다. 순서가 거꾸로였던 거죠.
데이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에서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부터 알면 됩니다. 대단한 도구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 글이 대표님께 드리는 것
이 글을 다 읽으면 우리 데이터가 어디서부터 안 잡히는지 드러납니다.
O 또는 X로만 답하는 열 문항을 드립니다. 5분이면 됩니다. 다 풀면 우리 회사가 데이터 레벨 1, 2, 3 중 어디에 있는지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 레벨에서 다음으로 올라가려면 무엇 딱 두 개를 잡아야 하는지, 그 두 개를 처방으로 드립니다.
미리 안심시켜 드리겠습니다. 레벨 3까지 가는 데 비싼 도구는 필요 없습니다. 엑셀 하나면 레벨 3까지 갑니다. 진짜입니다. 도구가 없어서 데이터를 못 잡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순서를 몰라서 못 잡습니다.
10분 뒤 대표님 손에는 두 가지가 남습니다. 하나는 우리 회사의 현재 좌표입니다. 막연히 "우리는 데이터가 약하다"가 아니라 "우리는 레벨 2, 그중에서도 3번과 6번이 비어 있다"처럼 콕 집힌 좌표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주에 할 딱 두 가지입니다. 늘어놓은 할 일 목록이 아니라, 다음 계단 한 칸을 오르는 두 동작입니다. 좌표와 두 동작. 이것만 가져가셔도 이 5분은 남는 장사입니다.
저는 화려한 대시보드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200곳이 넘는 브랜드의 매출 시트를 직접 열어 봤습니다.
그중에는 수천만 원짜리 데이터 도구를 붙여 놓은 회사도 있었습니다. 화면은 화려했습니다. 그래프가 돌아가고 색이 예뻤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달 한 명 데려오는 데 얼마 들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답이 안 나왔습니다. 도구는 비싼데 정작 대표님 머릿속엔 숫자가 없었습니다.
반대인 회사도 봤습니다. 작은 온라인 쇼핑몰 하나인데, 대표님이 엑셀 한 장을 열어 보였습니다. 손으로 매일 적은 시트였습니다. 매출, 주문 수, 광고비, 재구매율이 날짜별로 줄 맞춰 있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어제 광고를 왜 늘렸는지, 그게 어떻게 됐는지 술술 말했습니다.
도구의 화려함과 데이터의 힘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대표님이 그 숫자를 손에 쥐고 있느냐입니다. 화려한 도구는 오히려 숫자와 대표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남이 만들어 준 대시보드는 대표님이 그 숫자를 직접 계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화면은 예뻐도 머리에는 안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엑셀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손으로 한 번 계산해 본 숫자만이 대표님 것이 됩니다.
왜 데이터가 안 잡히는가
이유는 도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순서를 건너뛰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데는 바닥부터 쌓는 층이 있습니다. 맨 아래는 숫자를 한곳에 모으는 층입니다. 그 위가 그 숫자를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층입니다. 또 그 위가 숫자끼리 엮어서 뜻을 읽는 층입니다. 맨 위가 그걸로 사람을 나눠서 다르게 대응하는 층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가 바닥 층을 건너뛴 채 꼭대기 이야기를 따라 하려 한다는 겁니다. 코호트니 세그먼트니 하는 말은 사실 3층, 4층 이야기입니다. 1층인 "주문 데이터를 한 번이라도 내려받아 봤다"가 안 되어 있는데 4층 흉내를 내려니 될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대표님이 속으로 하실 걱정을 대신 꺼내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한참 뒤처진 거 아니냐." 아닙니다. 대부분이 1층과 2층 사이에 있습니다. 뒤처진 게 아니라, 지금 밟고 선 계단을 정확히 몰랐을 뿐입니다. 계단을 알면 다음 한 칸만 오르면 됩니다. 4층까지 한 번에 뛸 필요가 없습니다.
층을 건너뛰면 왜 안 되는지 한 번 더 짚겠습니다. 데이터의 각 층은 아래층을 재료로 씁니다. 2층의 기록은 1층에 모은 숫자가 있어야 적을 수 있습니다. 3층의 해석은 2층에 쌓인 기록이 있어야 뜻이 보입니다. 4층의 대응은 3층의 해석이 있어야 방향이 섭니다. 재료 없이 요리부터 하려니 안 되는 겁니다. 남의 회사가 4층 이야기를 할 때, 대표님이 할 일은 그걸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1층을 단단히 하는 겁니다. 이게 이 진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또 하나. 층을 건너뛴 회사는 겉으로는 데이터를 잘 쓰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비싼 도구를 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닥이 비어 있으면, 그 도구가 뱉는 화려한 그래프는 근거가 없는 그림에 불과합니다. 도구가 대표님을 데이터 회사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대표님이 매주 숫자를 손으로 만지는 습관이 데이터 회사를 만듭니다.
처방: 데이터 성숙도 자가진단 10문항 (O/X)
지금부터 열 개의 문장을 드립니다. 사실이면 O, 아니면 X로 적으십시오.
채점 원칙. 어정쩡하면 X입니다. "한 번쯤 해본 것 같다"는 O가 아닙니다. 지난 한 달 안에 실제로 했으면 O, 아니면 X입니다. 자기 회사를 후하게 보고 싶은 마음은 압니다. 그런데 이 진단은 남에게 보여 줄 성적표가 아닙니다. 대표님 혼자 보는 지도입니다. 지도에 없는 길을 그려 넣으면 길을 잃는 건 대표님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만큼은 인색하게 채점하십시오. X가 많이 나올수록 오늘 할 일이 선명해집니다.
- 우리 주문 데이터를 엑셀로 내려받아 본 적이 있다.
- 전환율을 매주 기록한다. (전환율은 방문한 사람 중 몇 퍼센트가 샀는가입니다.)
- 광고비와 매출을 같은 표에서 나란히 본다.
- 공헌이익을 계산해 봤다. (공헌이익은 한 개 팔았을 때 광고비 빼기 전에 손에 남는 돈입니다.)
- UTM을 쓴다. (UTM은 링크에 꼬리표를 달아 어디서 들어왔는지 표시하는 것입니다.)
- 재구매 주기를 안다. (평균 며칠 만에 다시 사는지 숫자로 압니다.)
- 고객을 나눠서 문자나 메일을 보낸다. (전체 발송이 아니라 산 사람과 안 산 사람을 갈라서 보냅니다.)
- 행사 전후를 6주 합산으로 비교한다. (행사 당일만이 아니라 앞 3주, 뒤 3주를 묶어서 봅니다.)
- 상품별 마진표가 있다.
- 월 1회 숫자 복기 회의를 한다.
이제 O가 몇 개인지 세십시오.
O 개수로 보는 레벨 판정
| O 개수 | 레벨 | 지금 상태 |
|---|---|---|
| 0 ~ 3 | 레벨 1 감으로 운영 | 대표님의 감과 기억으로 굴러갑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판단할 근거가 없는 상태입니다. |
| 4 ~ 7 | 레벨 2 반자동 | 숫자를 모으긴 하는데 엮어서 읽지는 못합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오래 머무는 구간입니다. |
| 8 ~ 10 | 레벨 3 데이터 운영 | 숫자가 의사결정에 실제로 쓰입니다. 안 되는 문항 한두 개만 채우면 됩니다. |
레벨 1이라면 지금 회사는 대표님의 감과 기억으로 굴러갑니다. 잘될 때도 왜 잘되는지 모르고, 안될 때도 왜 안되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시작하는 대부분이 여기입니다. 문제는 이 상태로는 무엇을 고쳐야 할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대표님의 감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감만으로는 규모를 키울 수 없습니다. 매출이 두 배가 되면 챙겨야 할 변수도 두 배가 되는데, 머리 하나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레벨 2에서 더 안 올라가는 이유는 대개 바쁨입니다. 숫자를 엮어 볼 30분을 매주 못 내는 겁니다. 여기서 한 칸만 더 오르면 숫자가 대표님한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 요일이 이상하다", "이 상품이 남는 게 없다" 같은 말을 숫자가 먼저 해 줍니다.
레벨 3에서는 광고를 늘릴지 줄일지, 어떤 상품을 밀지, 언제 문자를 보낼지를 감이 아니라 숫자로 정합니다. 이 단계부터는 도구를 검토해도 좋습니다. 손으로 하던 걸 자동으로 바꿀 때가 온 겁니다. 습관이 먼저, 도구가 나중입니다.
레벨별로 지금 잡을 것 딱 두 개
욕심내지 마십시오. 레벨마다 다음에 잡을 것을 딱 두 개만 드립니다. 이 두 개만 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갑니다.
레벨 1이라면. 첫째, 주문 데이터를 엑셀로 내려받으십시오(문항 1). 스마트스토어든 자사몰이든 주문 내역 다운로드 버튼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번 주에 한 번만 눌러 보십시오. 둘째, 전환율을 매주 한 줄씩 기록하십시오(문항 2). 방문자 수와 주문 수만 있으면 계산됩니다. 이 둘이 데이터의 바닥입니다. 이게 없으면 위층은 못 올립니다.
레벨 2라면. 첫째, 광고비와 매출을 한 표에 붙이십시오(문항 3). 흩어진 두 숫자를 나란히 놓는 순간, 광고가 남는 장사였는지 아닌지가 처음으로 보입니다. 둘째, 재구매 주기를 계산하십시오(문항 6). 한 번 산 사람이 언제 다시 오는지를 알면, 그때 맞춰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둘이 숫자를 뜻으로 바꾸는 열쇠입니다.
레벨 3이라면. 안 채워진 문항 두 개를 골라 그것부터 메우십시오. 대개 문항 7(고객 나눠 보내기)이나 문항 8(6주 합산 비교)이 비어 있습니다. 이 둘은 데이터를 행동으로 바꾸는 마지막 층입니다. 숫자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숫자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고, 행사의 진짜 효과를 앞뒤로 재는 단계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데이터는 리포트가 아니라 무기가 됩니다.
도구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지금 말한 열 가지, 전부 엑셀로 됩니다. 함수 몇 개면 충분합니다. 도구를 사기 전에 이 열 줄부터 채우십시오. 도구는 채운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당부드립니다. 두 개를 정했으면, 그 두 개가 습관이 될 때까지 다른 걸 늘리지 마십시오. 레벨을 못 올리는 회사의 공통점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벌여서입니다. 열 가지를 이번 주에 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다음 주엔 한 가지도 안 남습니다. 두 개만. 그 두 개가 몸에 붙어서 안 해도 손이 가는 상태가 되면, 그때 다음 두 개를 얹으십시오. 데이터는 결심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반복으로 쌓입니다.
사례: 실내 식물 스마트스토어의 레벨 이동
실내 식물(플랜테리어)을 스마트스토어에서 파는 한 셀러의 이야기입니다.
이 대표님은 저를 만났을 때 O가 두 개였습니다. 레벨 1이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스스로를 꽤 데이터를 본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광고 관리자 화면을 매일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숫자를 어디에도 옮겨 적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보긴 하는데 남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딱 두 가지만 했습니다. 주문 데이터를 매주 금요일에 한 번 내려받기. 그리고 방문자 수와 주문 수로 전환율을 한 줄 적기. 처음 한 달은 그냥 적기만 했습니다.
두 달째, 시트에 줄이 쌓이자 대표님이 먼저 발견했습니다. 특정 요일의 전환율이 유독 낮았습니다. 그 요일에 유입은 많은데 사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전엔 안 보이던 겁니다. 매일 광고 관리자만 봤을 땐 절대 안 보였습니다. 시트에 줄이 쌓이니 비로소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요일에 재고가 자주 품절이었습니다. 유입은 광고가 데려오는데, 정작 사려고 들어온 사람은 품절 표시를 보고 나갔던 겁니다. 광고비는 그대로 태우면서 말입니다. 이건 소재 문제도, 가격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재고와 광고가 따로 놀던 문제였습니다. 시트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구멍입니다.
O는 두 개에서 다섯 개로 올랐습니다. 레벨 2로 넘어간 겁니다. 대단한 도구를 산 것도, 사람을 뽑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10분, 엑셀 한 장. 그게 전부였습니다.
이 대표님이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보던 화면인데, 옮겨 적으니까 다른 게 보이네요." 저는 이 말이 데이터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손으로 적는 것은 다릅니다. 눈은 흘려보내고, 손은 남깁니다. 남은 줄이 쌓여야 비교가 생기고, 비교가 생겨야 이상한 지점이 튀어나옵니다. 화려한 도구가 아니라 이 남기는 습관이 레벨을 올립니다.
마무리
세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첫째, 데이터에는 층이 있고, 우리는 대개 바닥 층을 건너뛴 채 꼭대기를 흉내 냅니다. 둘째, O/X 열 문항을 풀면 우리 레벨과 새는 지점이 드러납니다. 셋째, 레벨마다 잡을 건 딱 두 개, 엑셀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 쇼핑몰 관리자 화면에 들어가서 주문 데이터 내려받기 버튼을 한 번 누르십시오. 파일 하나 여는 것, 오늘은 거기까지면 레벨 1을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그 파일을 분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은 그냥 열어 보는 것, 우리 데이터가 이렇게 생겼구나 눈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처방전을 우리 회사 숫자로 열어보고 싶다면
글로 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계정을 열어 보기 전에는 어떤 진단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 숫자로 병목을 짚고 싶다면 진단을 신청해 주세요.